작은 원을 그려보았다. 손끝을 따라서 동그란 원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나무를 향해 말했다.
“나는 일곱 살이야. 너는? 너는 나이가 많으니?”
그리고는 밟아도 소리 나지 않고 발이 푹푹 빠지는 아주 고운 모래에 다시 동그마니 원을 그렸다. 손끝을 따라 그려지는 원은 모래에 나이테가 그려지는 듯 동그랗게 또 동그랗게 그려져 나갔다. 여러 개의 원이 모이니 톱니바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린근원의 손끝에 흐르는 동심원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근원은 등산화 끈을 조금 당겼다. 오늘은 등산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A, B팀으로 나뉘어 각자 배정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근원은 A팀에 배정되었고 아침으로는 김밥과 음료수, 물이 주어졌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남편과 자식들 이야기로 버스를 가득 메웠고 근원은 홀로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오늘의 사회자로 나선 남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근원은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대다수의 입장에 반기를 들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경을 다른 데로 쏟기 위해 근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온 시집을 꺼내들었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한두 번쯤 나가본 시사랑 동호회에서 추천받아 사게 된 시집이었다. 시를 잘 모르는 그였기에 어쩌면 시를 더욱 잘 읽고 느낄 수 있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노송’이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했다. 8줄 내외로 간략하게 쓰인 시에는 늙은 소나무에 대한 작가의 영감이 손끝을 타고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읽기 어려운 점이 없었음으로 근원은 비교적 잘 쓴 시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한번 읽고 밀려오는 졸음에 정신을 내어주고 목적지까지 다다랐을 그였지만 근원은 자신이 시를 쓰는 작가라면 늙은 소나무를 가지고 어떤 시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읽었던 시가 머릿속에 맴돌아 근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근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몸짓이었다.
‘늙은 소나무라. 소나무는 원래 좀 늙지 않았나? 어디를 돌아다녀보아도 1,2년 된 소나무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한 400년쯤은 되어야 하지 않나?’
근원은 속으로 속삭였다. 속으로 말하는 것이라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근원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도착 10분 전입니다. 오늘 저희가 가기로 한 곳은 산이 아니라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에 크게 힘든 점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므로 단단히 준비하시고 내리셔서 일사분란하게 모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소나무가 정말 예술입니다.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사진 찍으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제 차가 멈춰서면 내리세요.”
사회를 맡았던 남자는 도착 10분전을 알리며 깔끔하게 정리멘트를 보냈다. 근원도 잠시 생각을 접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모처럼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 따라 물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였다. 사회자 남자의 말에 의하면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했다. 남자는 차안에서 읽은 시를 떠올렸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동호회 사람을 제외하고도 많은 인파가 색색 깔의 등산복을 입고 소나무 숲길을 걷기위해 몸을 풀었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뒤 각각 흩어져 걷기 시작했다. 송림이 우거진 숲에 다다르자 길게 뻗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그 자태를 뽐내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고 근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소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오백년 된 늙은 소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노송이라’
근원은 머릿속에 시를 그려나갔다.
늙은 소나무
너는 말없이 늙어있구나
너의 늙음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너의 몸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갔구나
지나간 세월만큼 너는 늙어있구나
굵은 기둥은 단단하고
네 몸뚱이에서 풍겨오는 짙은 냄새가
너의 늙음을 대신하는 구나
근원은 다시 한 번 흙바닥에 동그마니 원을 그려보았다. 어린 근원이 모래바닥에 작은 동심원을 그려 넣듯이 늙은 소나무 앞에서 동심원을 그려나갔다.
문밖에서 부는 바람소리에 촛대의 불이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현의 방을 비추는 야심한 시각이었지요.
“무릇 양반이라면 돈은 손으로 만지지 말고 쌀값을 직접 물어보아도 안 된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는 국부터 먹어서도 아니 된다.”
다리가 저려오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왔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현은 꿋꿋하게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회마을에서 현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현의 집안은 대대로 훌륭한 벼슬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 가문의 외아들인 현은 아버지와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증손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침소에 드셨으나 현은 달빛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현은 이러한 양반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한 답답함과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이에 대한 위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현의 집에서 머슴으로 지내는 만복이가 살금살금 대문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독 야심한 밤 잦은 외출이 의심스럽던 만복이었습니다. 마음도 심란하고 마침 잠도 쉬이 오지 않던 현은 만복이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향하던 만복이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일곱 명 정도의 동네 머슴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하나같이 희한한 모양의 탈을 쓰고는 중얼중얼 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이보게 선비, 나는 사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양반이라오.”
“이보게 양반, 나는 오대부 육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선비라오.”
가만히 들어보니 양반과 선비들을 비꼬는 식의 놀이마당 인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있는 모양의 탈을 쓰고 있었지요.
마을의 머슴들이 모여 하나같이 양반과 파계승, 선비들을 비웃고 비꼬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충격과 거기에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만복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현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아까의 탈놀이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만복이는 어김없이 대문으로 향하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였지요. 그 뒤를 조용히 밟던 현은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다랐고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만복이는 자신들이 양반을 희롱하였다는 사실이 들켜 엄벌을 받을까 두려웠고 무리들도 자신들이 모시는 양반에 알려질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현은 뜻밖의 제안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 무리에 끼워주시오. 탈을 쓰고 놀이를 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오.”
어리둥절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현은 단오하게 무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자신이 양반에 대한 위선과 회의감을 털어놓고 이 무리들에게 양반에 대한 허와 실을 말하며 양반인 자신이 직접 탈놀이를 하여 더욱 사실적인 탈놀이가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습니다. 끝내 무리는 현을 받아들이게 되고 현의 얼굴에 맞는 양반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무리들과 연습을 하던 현은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몇 회씩 놀이가 거듭될수록 현의 자신감은 날로 늘어나고 놀이판도 더욱 신명나고 재미있어 상민들 사이에 큰 입소문을 타면서 저잣거리의 큰 행사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만 추며 몇 마디 대사로만 이루어졌던 탈놀이가 악기들이 늘어나 더욱 신명나고 대사들은 더욱 신랄해지며 구경꾼들도 함께 참여하는 큰 놀이마당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놀이판이 점점 커지면서 양반들의 귀에도 하나 둘씩 탈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양반들은 치욕스럽고 화가 치밀었지만 하나둘 씩 그 내용이 궁금하긴 하였습니다. 이로써 양반들은 서로 쉬쉬하며 탈놀이를 보기위해 저잣거리로 나가는 양반들도 생겨나게 되고, 현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다른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탈놀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지금도 양반탈을 쓴 현은 신명나는 놀음 한 판을 벌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나의 오래된 꿈 중에 하나는 바로 시인이다. 시는 곧 인생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여겨왔던 나는 늘 항상 옆구리에 오래된 시집 하나를 끼고 다녔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인지 시를 쓰며 세상을 그리고 현재의 환경을 비뚤어진 필체로 휘갈겨 쓰며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도 나는 내 인생이 탄탄대로의 삶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 남들처럼 멋지게 시 한편 적어 신춘문예 당선은 물론 등단작가로서 시나 읊으며 살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그저 그런 글쟁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도 조금의 위안이 된다면 국문과를 졸업했다는 희미한 스펙으로나마 자그마한 신문사에 취직을 하여 20여 년간을 묵묵히 시 곁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간간히 내로라하는 신문사의 이름을 달고 올해는 누가 신춘문예 당선이 됬다더라 누가 새로운 시집을 발간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저 밑바닥에 있던 꿈이 불쑥 하고 올라왔다 다시금 잠잠해지는 것 빼고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달까.
대학시절 나는 내 친구와 함께 ‘담쟁이’라는 시와 문학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치 80년대 영화처럼 빙그르르 모여 앉아 서로의 시를 감상하며 우수에 젖어들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단발머리 여자아이를 좋아했기에 그녀에게 들려줄 만 한 시를 쓰느라 밤새 몇 장의 종이를 찢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내 친구 녀석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가 좋아서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 모인 동아리 모임이 피 튀기는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을 무렵, 내 친구가 ‘소녀’라는 시로 발표를 할 때였다. 동그랗게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시의 소녀가 그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그 녀석뿐이었다. 어쩐지 그녀는 ‘소녀’라는 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나는 제대로 된 게임도 못해보고 뒤로 물러나야 했고 동아리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탈퇴를 하였다.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친구 녀석은 유명한 시인이 되어 잘 먹고 잘산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 친구 녀석에 대한 질투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저 유명한 시인이 되어 잘 먹고 잘 산다는 그 말에 잠시 동안 생각이 멈춰있을 뿐이었다.
“김부장님, 부장님도 소싯적에 시 쓰셨다면서요? 그럼 신춘문예 같은데 넣어보시지 그러셨어요. 아참, 이번에 칼럼대신에 <소녀>로 등단한 시인B님 시가 연재 될 예정이라는데 부장님 아는 사람일 거라고 하던데요?”
모르는 이야기다. <소녀>로 등단한 시인B라 하면 그 녀석인가 보다. 갑자기 내 책상서랍 제일 밑에 내가 가장 아끼는 시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가끔씩 시를 끼적이던 습작노트도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분명 그 녀석에 대한 질투는 사라지고 난 뒤였는데.
나는 퇴근길에 언젠가 가보겠다며 벼르고 벼르던 시인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젊은 날엔 호기롭게 여기에도 내가 쓴 시가 당당하게 한 자리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하고 다녔는데 어쩐지 나는 이 길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녀석이 이 길의 중심 돌이라면 나는 그 곁에 머무는 나무 하나에 지나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시인의 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이때까지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시의 그리고 시인의 언저리에서 머무는 삶처럼 살다 가려는 마음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무언가를 생각하기엔 짧았고 하나하나 음미하며 걷기엔 조금 길었다고 하면 맞겠다. 오늘의 기분을 시로 쓴다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해봤다. 어쩐지 육두문자를 머금고 들어선 시인의 길에서 지금 이렇게 길 마지막에 서 있는 지금은 나름 홀가분한 기분이 더 컸다.
시인의 길. “다 좋은 말들뿐이군.”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멀리서 여중생들의 무리가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분위기 확 깬다는 생각을 하며 획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여중생들은 시인B, 그러니까 내 친구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소녀>읽어봤어? 그것도 시라고 썼냐? 촌스럽게.”
“원래 시는 촌스러운 거야. 몰라? 그리고 그 사람 나이가 있잖아. 그 정도면 봐줘. 그리고 요즘 누가 시를 사서 아냐?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거나 대충 읽다 마는 거지. 그것도 시험에 안 나온다고 하면 시따위 그거 읽지도 않아.”
여중생들은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꽤나 마음에 맺히는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시인B의 시를 제멋대로 평가하면서 말미에는 시따위라며 시를 철천지원수인양 떠들어댔다. 나는 그 여중생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재빨리 시인의 길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로 쓰여진 그 길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한동안 쓰지 않던 ‘시 한편을 써야 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는 시든 꽃처럼 좀체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다. 얼마 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으로 등 떠밀려 퇴사를 하시고는 집에서 가사일 만하는 전업주부의 삶에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하셨다. 나와 언니, 오빠는 이제 그만 집에서 쉬시라고 그만큼 자식들 뒷바라지 하며 사셨으면 됐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에 매진 하냐고 했더니 엄마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신다.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이 아니야. 니들은 니들이 알아서 사는 거고 나는 내 알아서 사는 거지. 자고로 사람은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럼 엄마 잘하는 그거 있잖아. 비즈공예랑 뜨개질. 그거 예쁘게 만들어서 저기 예술의 거리에서 가게 하나 얻어서 그거 파는 건 어때?”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홀로 우리 삼남매를 키워야 했다. 엄마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홀로 삼남매의 의식주와 교육까지 책임져야 했던 엄마의 인생에서는 쉼표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뛰어야 했다. 아주 잠깐 쉰다고 하면 우리 오빠랑 언니가 고3 수험생일 때 밤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해서 같이 밤을 새며 뜨개질이랑 비즈공예를 하며 본의 아닌 취미를 만들어 나가신 것 빼고는 없었다. 사실 엄마의 인생에서 봄이 있었을 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참 힘들고 바쁘게 사셨다. 그런 엄마보고 이젠 좀 쉬시라고 해보아도 소용이 없다. 어찌 지난 25년간의 삶의 패턴이 쉽게 바뀌기야 하겠느냐며. 그러던 중 언니는 나름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엄마가 손재주가 좋다는 것을 이용하여 퇴직금으로 받은 돈과 우리 삼남매가 돈을 보태어 작은 공방 아닌 공방을 차려드리는 것이다.
“예술의 거리? 내가 뭐 예술가도 아니고 이건 그냥 취미라 누가 사가는 사람도 없을 텐데. 잘 될까?”
“그러니까 공방에서 아줌마들 모아서 만드는 법도 알려주면서 팔찌나 목걸이 뭐 그런 거 파는 거지.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꽤 잘 되던데? 엄마 실력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요즘 젊은 사람들 트렌드가 요런 복고거든. 그래서 딱 좋은 것 같은데?”엄마는 이렇게 나누는 말 뿐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생기를 되찾으신 듯 했다.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진취적인 결정으로 일을 밀어붙일 때이다. 엄마는 약 일주일간 이곳저곳을 알아보시며 신중히 고민을 하신 끝에 우리 삼남매를 불러 앉혀놓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예술의 거리에 10평 남짓한 공간에 세를 받아 가게를 차렸다. 작은 평수임에도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꾸며 놓으니 제법 괜찮아보였다. 옆에는 작은 소극장들이 있어서 공연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구경하며 몇 개씩 구입하기도 하여 목도 괜찮았다.
한 4개월 쯤 되니 차차 단고로 생기고 옆 가게 아주머니들과도 친목을 쌓았다. 엄마는 완전히 만개한 꽃처럼 생기를 되찾으셨다.
“어서오세요. 아, 정선생님 오셨어요?”
엄마가 정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엄마 가게 앞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시는 늦깎이 남자 배우이시다. 정선생님도 회사 정년퇴임을 하시고는 소싯적 꿈을 펼치시고자 공연장에서 배우로 활동하게 되셨다고 했다. 마침 공연장에서는 노년의 삶에 대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고 당당히 오디션도 합격한 엄연한 배우이시라며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정선생님께서는 공연 준비 한 두 시간 전에 엄마 가게에 놀러 오신다고 했다. 두 분은 가끔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누시며 가깝게 지내시는 것 같았다. 나와 언니도 엄마 가게에서 정선생님을 한 번 뵌적이 있었는데 중후한 외모에 인품도 좋은 신 것 같고 무엇보다 정선생님도 몇 해 전에 아내와 사별하여 혼자라고 하셨기에 슬쩍 엄마에게 잘해보라는 말을 건넨적이 있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아, 박여사님. 저기, 오늘 혹시 시간되시면 제 공연 보러 오시지 않을래요? 오늘이 제가 주인공으로 서는 마지막 공연이 될 것 같아서요.”
“아, 그러세요? 그렇담 가야지요. 8시 반 공연이라고 하셨나요?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엄마는 8시에 근처 꽃가게로 가셨다. 아마 정선생님께 드릴 꽃다발을 사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밝게 웃으셨고 왠지 엄마에게 여러모로 두 번째 봄이 온 것 같았다.
높고 큰 백화점 사이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 유니폼을 챙겨 입고 나타난 것을 보니 오늘도 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형준의 모습이 보였다. 혜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형준과 혜연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학창시절 당시에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나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나면서 둘은 새삼 가까워졌다. 30대를 넘긴 나이라 그런지 거리감이 없었고 이야기도 훨씬 잘 통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니 직장은 어떠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시간을 추억하다 자연스레 서로의 취미에 대해 물었다.
“나 쭉 야구부였던 거 알지? 물론 지금은 선수로 생활은 못하지만 주말이면 거의 프로야구 보러 잠실에 가.”
“아 맞다! 너 야구부였지? 유니폼 참 멋있었는데. 근데 난 잠실에 살면서도 야구는 한 번도 보러 간적이 없어. 기회가 없기도 했고 딱히 응원하는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래? 그럼 나 이번 주 주말에 야구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저 멀리서 혜연이 급하게 달려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미리 티켓을 준비해 온 형준을 따라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의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빽빽하게 자리를 채워나갔다. 형준도 맥주 두 캔과 치킨을 들고 미리 끊어놓은 티켓의 좌석을 확인했다. 경기 시작 전 임에도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 정말 많다. 야구가 인기가 많긴 하구나.”혜연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선수들이 몸을 풀기위해 나왔고 시구를 하기위한 연예인이 등장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시구구나!”
“크큭, 야구 처음 보러 온 것 제대로 티내네. 곧 경기 시작이다. 가볍게 맥주 한 잔으로 시작해 볼까?”
사람들은 시구에 열띤 환호를 보냈고 형준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경기 관람을 위한 워밍업을 했다. 드디어 1회 초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룰을 잘 모르는 혜연을 위해 형준은 자상하게 룰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야구는 던지고 치고 뛰고 잡는 게 다야’라며 한줄 정리를 해준 것이 다였다. 혜연은 룰을 잘 몰랐지만 사람들의 분위기와 경기의 긴장감에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며 구단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이 나왔다. 사람들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목청껏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이 왜 야구장에 오는 지 알 것 같아.”
“그야 재밌으니까.”
“맞아. 재밌으니까.”
5회 말 경기가 끝났을 때 야구장의 꽃 ‘키스타임’이 돌아왔다. 가장먼저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백발의 노부부였다. 할머니는 쑥쓰러운 듯 손사래를 쳤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사람들은 노부부에게 열띤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20대 귀여운 커플이었다. 당당하게 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세 번째는 귀여운 엄마와 아들이었다. 신체보다 훨씬 큰 유니폼에 귀여운 야구모자를 쓴 아이는 엄마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혜연은 기분이 참 묘했다. 물론 야구장엔 2~30대 젊은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가족부터 연인까지 그 세대도 참 다양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건전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키스타임의 마지막 커플로 형준과 혜연이 잡혔다.
사실 둘이 함께 왔으니 카메라를 잡아주는 사람도 둘이 커플인지 친구인지 알 길은 없었다. 혜연은 놀란 마음에 손사래를 쳤으나 형준이 돌연 혜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작게 “원래 이런 데 와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속삭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보내자 혜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열띤 응원을 하는 형준과 달리 혜연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서른 넘은 나이에 주책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나 왠지 형준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경기가 끝이 나고 형준이 응원하던 구단이 승리를 얻자 형준의 기분은 더욱 좋아보였다.
“야구장 처음 와본 소감이 어때?”
“음, 재밌었던 것 같아. 다음에 오면 응원도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너도 이 매력에 푹 빠졌구나. 다음에 또 오자! 그땐 제대로 더 신나게 놀다가자고.”
“으응.”
형준과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늙음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노부부. 가족이 함께 유니폼을 맞춰 입고 목마를 타며 목청껏 응원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는 주말.
‘야구장. 참 재밌는 곳이네.’라며 혜연은 잠시 중얼거렸다.
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남편이 수상하다. 대중가요에서였나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20여년을 가까이 살 맞대고 살았는데 의심의 불씨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남편은 오로지 한 길밖에 모르고 살았다. 가정과 직장. 성실하나로 친정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뚝심 있게 밀어부처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의 남편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동창애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기 때문이다.
“얘, 남자는 다 똑같더라. 우리 남편은 아니겠지. 우리 애 아빠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딴 주머니 차고 다니는 게 남자라니까. 글쎄 세훈이 엄마 알지? 그 집도 이번에 이혼한다고 난리잖아.”
“어머, 왜?”
“왜긴, 여태 뭐 들었니? 딴 주머니 찼다니까. 글쎄 뭐라더라? 등산모임에서 둘이 눈이 맞았다나? 아무튼 뒤돌아서면 딴 생각하는 동물이 남자라는 동물이라더니. 세훈이 아빠 병수발 다 받아낸 게 세훈이 엄마인데 건강 생각한다면서 다닌 등산모임에서 바람이 날 줄 누가 알았겠니?”
“어머, 어머. 세훈이 엄마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위자료나 왕창 뜯어내고 갈라서는 거지. 간통죄로 안 처넣은 게 다행이라나 뭐라나.”
동창애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행이 점점 거침없었다. 동창애의 언행처럼 나의 의심도 거침이 없었다. 남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둥, 셔츠 옷깃을 살피는 등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던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모르는 번호들이 적혀있었고 퇴근하면 바로 퇴근하던 남편은 요즘 새벽에나 들어왔다. 어딜 다녀오는 것이냐고 해도 답이 없었고 술을 마신 것 같지 않은 것이 회식도 아닌듯했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슬쩍 거실에 나와 서 있는데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때다 싶어 문자를 열어보니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는 등의 문자가 와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음에 더 서글퍼졌다.
날이 밝았다.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니 두 눈이 퀭했다. 어쩐지 잠을 한 숨도 못잔 나보다 남편의 얼굴이 더 퀭해보였다. 속으로는 두 집 살림 하려니 힘들기도 하겠지라며 비꼬았으나 아직은 내색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렇다 할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갔을 때 어제 밤에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어떤 여편네가 받겠지라는 생각을 했건만 멀쩡한 남정네가 전화를 받았다.
“저, 혹시 김영훈씨 아세요?”
“네? 김영훈이요? 누구시죠? 전 그런사람 모르는데.”
“네? 어제 김영훈씨한테 수고 많았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문자 보내시지 않으셨어요?”
“아~ 대리기사요?”
전화를 받은 남자의 입에서는 대뜸 남편을 대리기사라고 불렀다.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는 남편이 왜 야간 대리운전을 뛰고 있는가. 왜 나에게는 일언반구 아무런 말도 없이 투잡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씻고 나온 남편이 채 옷을 다 꺼내 입기도 전에 따져물었다.
“당신 뭐야? 당신 밤에 대리기사 뛰어? 도대체 왜? 당신이 왜!”
“당신 내 휴대전화 뒤져봤어?”
“지금 그게 문제야? 왜 대리기사를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하고 있냐고 왜!”
나는 남편에게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 그간 남편을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이 왜 힘든 시간을 홀로 보내게 내버려두었나 하는 자책감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 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곧 그만 둘 거야.”
남편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고 자리를 회피했다. 하루종일 넋이 나가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는데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얘, 나다. 김서방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니. 내가 손 벌릴 곳이 없어서 너네한테까지 손을 다 벌리고. 김서방 덕분에 다행히 급한 불을 껐다고 전해줘. 너도 마음고생 많았지? 조만간 집으로 와. 맛있는 저녁 해 줄 테니까.”
“엄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 해봐.”
“어머, 너 몰랐니? 내가 얼마 전에 급한 목돈이 좀 필요해서 전화했는데 김서방이 받더라고, 그래서 너랑 잘 상의해서 돈 좀 구할 수 있겠냐고 했지. 그랬는데 넌 모르고 있었니?”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괜히 친정 부모님 걱정할까봐 내 통장 하나 건드리지 않고 혼자 그 목돈을 구하려 대리운전까지 했던 거다.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야 남편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남편을 꼭 안았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런 내게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이 정도도 못하면 어디 쓰겠냐고 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나는 남편과 다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화초를 가꾸는 일을 그만두라 하였더니, 어머니는 꽤 서운하신 모양이었다. 이제 육십 대 후반 줄에 들어서신 어머니는 요즘 들어 허리며 어깨며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더운 날씨에 화단의 꽃들을 가꾸느라 몇 시간씩을 땡볕에서 보내시니, 옆에 붙어 있지도 못하는 딸자식은 답답할 따름이다. 봄이면 봄꽃 축제, 여름이면 장미 축제, 가을이면 가을꽃 축제, 겨울이면 눈꽃 축제가 열리는 이 꽃다운 곳에서 왜 굳이 어머니까지 직접 꽃을 키워야만 하는가.
집에 들를 때마다 이제 그만하시고 집에 가만히 좀 계시라 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이번엔 단단히 화를 내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등을 돌리고 앉아, 옷자락만 만지작거리고 계셨다.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싫어, 나는 나도 모르게 또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몇 달이나 집에 들르지 못했던 나는, 어머니로부터 사진이 첨부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휴대전화를 사 드린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오타가 가득한 어머니의 문자는 여전했다. ‘언제’가 ‘ㅇ너제’, ‘엄마’가 ‘어마’로 표기된 문자와 몇 분 동안이나 씨름했지만, 도대체 전문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엄마 참 여전하구나.”
나는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어머니가 보낸 흔들린 사진 속의 피사체가 대체 무엇인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당장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진 속에 꽃이라고는 단 한 송이도 없는 빈 화단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이게 뭐야? 꽃들 다 없애버린 거야? 누가 이렇게 다 없애버리라고 했어, 조금만 덜 고생했으면 좋겠다고 했지.”
나는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할 말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뜻밖에 밝았다.
“아이고, 얘. 그 귀한 것들을 없애기는 누가 없앴다고 그래? 네가 화초 키우지 말랬지, 어디 갖다 버리라고 했느냐?”
내게 보여줄 것들을 잔뜩 준비했다는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오랜만에 집으로 향하며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와, 이게 다 뭐야?”
어머니는 마른 꽃을 인쇄하듯 한지에 박아 넣어 만든 공예품들을 하나둘씩 꺼내 보이셨다.
“이것 봐라. 꽃 가꾸는 것까지 그만두고는 집에 혼자 있기가 영 적적하고 해서 뭐라도 배워볼까 했더니, 이런 게 있지 뭐니. 이게 다 내가 요 앞에 있던 꽃으로 만든 거야. 신기하지 않어?”
꽃이 눌러 담긴 전등갓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아래로 꽃이 눌러 담긴 부채가 펼쳐졌다. 노란 백열전구 불빛에 비치는 줄기가 뻗은 모양새며 이파리의 맥들, 꽃잎들의 조화가 마치 그림 같았다.
“누른 꽃이라구 해서, 이걸 압화라고 한단다.”
“이걸 정말 엄마가 만들었단 말이야?”
내가 어머니의 압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어머니는 장롱 아래서 오래된 앨범을 하나 꺼내 펼치셨다. 앨범 속에는 화단 앞에 앉아 웃고 있는 어린 내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너도 어렸을 때에는 이 꽃 가꾸는 걸 참 좋아했는데 말이야. 인제는 나 혼자 꽃을 키운다는데도 그렇게 성을 낼 건 또 뭐니. 다들 떠나고 나 혼자 이 집에 있으려니까 꽃이라도 예전처럼 가꿔볼까 한 건데.”
어머니는 채송화에 코끝을 갖다 댄 열두어 살의 내 사진을 한참이나 쓸어 보셨다.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원룸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머니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어머니는 미안해하는 내 표정이 영 어색하신지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야아. 그래도 다 늙어서 혼자 화단 가꾸려니까 힘들기는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여기 가만히 눌러 담아 두기로 했지.”
나는 가방을 열고 책장을 펼쳤다. 어머니 몰래 눌러 담아 온 사진 한 장이 가로등 불빛에 가만히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