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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한 탑 위로 담쟁이가 핏줄처럼 엉켜 기어오른다.
평평하게 다져진 길 위의 낙엽이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다. 점점이 떨어져 너와 나를 이으려 하고 있다.
다녀간 이들이 남긴 뿌연 발자국만큼 막연해지는 마음. 그 가운데서 귀를 기울이면 문득, 바다에서도 목탁소리가 들린다.
곁에 아무도 없음이 기쁜 순간도 있다. 홀로 마주하여 더 황홀할 먼 등대와 섬들.
담 너머로 뻗은 가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뒤꿈치를 들고 뿌리를 찾는다.
성벽이었을 돌무더기 위로 구름이 둥실 넘어간다. 무엇을 지켜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경계를 그리면서.
빛이 그리는 선명함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다.
염색공장이 즐비한 곳, 굴뚝 하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제 막 색이 물들기 시작한 듯 연기가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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